잘 쓴 글, 잘 읽히는 글(웹소설 한정)
요즘 문피아에서 공모전이 진행되고 있다.
원래 장르 콘텐츠, 웹소설에 관심이 많아서 공모전 참가작들을 이것저것 보고 있는데 굉장히 특이한 글을 발견했다.
독특한 세계관을 잘 그려내서 무척이나 재밌게 읽었는데 희한하게 다시 읽으려니 피로도가 몰려오더라.
왜 그런 걸까 고민을 하다가 지금 감상을 이렇게 글로 남기게 됐다.
제목은 이름하여 잘 쓴 글, 잘 읽히는 글이다.
뭔 차이냐
잘 쓴 글이 잘 읽히는 글이고 잘 읽히는 글이 잘 쓴 글 아닌가?
물론 맞는 말이다.
그런데 차이가 좀 있는 것 같다.
정확히는 잘 쓴 글이라고 해도 다음에 잘 읽히지는 않을 수 있는 것 같다.
웹소설에 한하여 말이다.

20년 6월 3일 기준 문피아 공모전 현황, 연재 글이 엄청 많다
웹소설은 기본적으로 장편이다.
그리고 독자층의 특징은 하나의 글만 붙잡고 읽지 않는다는 점이 있겠다.
물론 특이하게 한 놈만 패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통은 여러 개의 글들을 연재를 따라가면서 읽게 된다.
그렇다 보니 글을 선택할 때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언제 읽어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.
다시 말하면, A라는 글의 2편을 읽고 D라는 글의 5편을 읽어도 재밌어야 된다.
그러려면 글이 너무 복잡하면 한계가 있는 것 같다.

출판 소설들은 일단 권단위 호흡이다
웹소설의 또다른 특징은 장편이지만 한 편 한 편이 단편처럼도 읽히게 된다는 것이다.
옛날 출판 소설은 일단 한 권을 읽으면 글 호흡이 한 권을 기준으로 읽힌다.
그런데 웹소설은 한 편씩 읽다 보니까 호흡이 굉장히 짧다.
그래서 글을 쓰는 방식이 좀 다르더라.
게다가 물리적인 문제도 있다.
옛날 출판 서적은 지금 읽던 페이지를 손으로 잡아놓고 앞의 내용을 쉽게 왔다갔다 할 수 있었다.
그런데 웹소설은 당장 같은 편에서 위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만 해도 피곤하다.
이게 은근히 큰 요소더라.
이런 특징들로 봤을 때, 웹소설에서 잘 쓴 글은 확실히 무조건 잘 읽히는 글은 아니다.
잘 쓴 글이라고 해도 그 다음편은 독자의 선택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.
잘 읽히는 글은 뭐냐?
내 개인적인 견해로 잘 읽히는 글은 쉬운 글이다.
직관적이고 직설적인 글.
떡밥이 뿌려졌으면 너무 오래 끌어선 힘들다.
3편의 글이라고 해도 3연재일이라고 생각하고 독자들이 하루에 10편의 글을 읽는다고 치면 떡밥이 풀어지는 3편까지 독자들은 20~30편의 글을 읽고 보는 것이다.
그 소설에 굉장한 애정을 갖고 있는 독자가 아닌 이상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수밖에 없다.

떡밥하면 역시… 지만 훗날 똥이 된 덴마
세계관도 그렇다.
나만의 독창적인,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세계관은 웹소설판에서 쉽지가 않다.
왜냐면 새로운 세계관을 공부하고 습득하는 데에 너무도 피로감이 생기니까.
그래서 맨날 현판이네, 레이드물이네, 상태창이네 하면서도 그런 글들이 잘 나가는 것이다.
오리지널리티를 조금 넣되, 너무 과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.

세계관이 독창적이었던 네이버 웹툰 동토의 여명, 하지만 그에 비해 인기는 아쉬운 편이었다
결론은?
잘 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, 욕심을 좀 버리자.
나만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지 말고 이미 알려진 세상에 나만의 특징을 섞자.
복잡한 스토리? 좋다.
하지만 복잡하더라도 짧게 끊거나,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 즐겁다가 한 번씩만 빵 하고 터트려주자.
그 정도 완급 조절을 잘 해주면 대단한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?
일단 잘 쓴 글을 쓸 수 있다는 부분에서 훌륭한 작가일 테지만.

인기 장르가 판타지, 현판인 이유가 다 있더라
나는 장르 콘텐츠를 좋아하고, 읽기도 정말 많이 읽었다.
거의 20년은 읽어왔을 것이다.
그래서 긴 호흡의 글도 좋아하고 짧은 호흡의 글도 좋아한다.
장편도, 단편도 모두 선호하는 편이다.
그런데 어느 순간 나도 새로운 복잡한 세계관의 글을 읽으면서 피로도를 느끼는 것을 알아차렸다.
그렇다면 다른 독자들도 비슷하거나 더 심할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들더라.
아니면 그냥 내가 나이를 먹어서 생각하기를 싫어하게 된 것일지도….
라고 짧은 한탄을 하며 글을 마친다.
그럼 이만!